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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은 왜 정변을 일으켰나?

46 낙엽송 9 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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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균과 갑신정변 / 글 선형길 

 

참고 - 아래 글은 필자가 근대사 관련 독서 중에 간략히 메모해둔 것을 재구성했습니다. 이 메모들은 이민원님의 '명성황후시해와 아관파천', 쓰노다 후사코 여사의 '최후의 새벽', 신명호님의 '고종과 메이지 시대', 서영희 교수의 '대한제국 정치사연구', 혜문스님의 '조선을 죽이다', 변원림의 '고종과 명성'등, 다수이고 간단한 메모를 재구성하다 보니 다소간 제 의견도 덧붙였습니다. 또한 이 글은 논문과는 무관하고 이후 제 창작을 위한 참고 자료로 사용 될 수있다는 점, 참고바랍니다. 

 

 

조선의 근대교육은 주로 미국에 의해 시작되었다조선 최초의 근대학교는 1883년 덕원주민의 요청으로 덕원부에서 세운 원산학사이다김옥균은 개화파간부 양성에 노력하여 고종을 설득해 50여명의 청년을 게이오 의숙과 육군 도야마(호산학교에 유학시켰다그는 유학생들에게 "일본이 아시아의 영국이 된다면 우리들은 조선을 아시아의 프랑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고 유학생들에게 주지시켰다.

 

1882년 7월 19(양력발생한 임오군란 종결 직후인 그해 양력 10월 초청은 조선과 상민수륙무역장전을 체결하고 그 전문에 조선은 청국의 속방이라고 표현했다청은 실패한 조선의 외교를 이유로 들어 외교고문을 파견하기로 했는데이들은 텐진 주재 파울 게오르그와 폰 뮐렌도르프 두 사람이다이에 답례사절로 청에 갔던 조영하와 어윤중이 그들과 함께 귀국한다이후 마첸총과 묄렌도르프는 정식으로 조선 정부의 고문이 되었는데뮐렌도르프는 정식수속을 밟고 입국한 제1호 유럽인이다그러나 민씨 일족의 세도정치는 안동 김씨 시대를 훨씬 능가했다중앙정계에만 민씨측 고관 40명이 포진했고 지방으로의 진출도 괄목할만했다.

 

임오군란의 배상문제를 담은 제물포조약의 비준과 일본에 사죄일환으로 철종의 사위인 박영효종사관 서광범고문으로 김옥균민태호의 아들 민영익신진기예 15명으로 사절단을 구성했다여비조차 없는 사절단에게 하나부사 요시모토 일본공사는 자신이 승선하고 온 기선 메이지마루에 사절단 일행을 태워주고 일본체재 경비 5천원도 일본 정부가 보조케 해주었다일본으로 가는 메이지마루 선상에서 김옥균이 태극기를 처음 만들었다고 알려졌는데메이지마루는 요코하마에 입항하나부사는 외무대보(차관요시다 기요나리에게 과거에 구애받지 말고 사절단을 잘 대접하라고 당부한다하나부사는 다시 태정대신 산조 사네토미의 결재를 받는다이로 인해 사절단은 가는 곳마다 일본인들의 환영을 받고 일본의 다양한 선진 문물을 견학한다제물포 조약에 근거한 배상액 5만원의 처리 방안에도 김옥균이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임오군란으로 피해를 입은 일본공관과 일본인 피해자 배상금 5만원은 5년 기한을 10년으로 연장했고요코하마 쇼킨 은행으로부터 17만원을 차관하여 12만원은 국고에 넣고 5만원은 1회분 공제했다. 17만원의 차관 이자는 연8% 이자로 2년 후부터 10년간 갚기로 했으나 쇼킨 은행은 부산세관의 수입권과 단천 사금광을 담보로 요구하였다.

 

당시 조선정부는 극도로 어려운 재정난을 타개하기 위해 묄렌도르프의 제안을 받아들여 주전소를 설치하고 그 책임자로 민태호를 임명하여 조악한 당오전의 주조를 맡겼다그러나 김옥균은 통화의 남발이 국민생활을 압박을 것이라며 반대하였고 외채를 발행하는 편이 유리하다고 역설하였다이로 인해 민비 일파로부터 요주의 인물로 찍힌 김옥균은 중앙의 요직에서 제외되었다평화적 방법으로 개화를 추진하는 데에도 자금은 필요하였기에 동남해안 제도(諸島,모든 섬개척사 겸 포경사가 된 김옥균은 그 포경권을 담보로 일본정부로부터 300만원의 차관을 얻으려고 했다. 1년 전 임오군란과 관련사죄 사절단의 고문으로 일본에 체재하던 중에 외무대보(차관급)을 통하여 '국왕의 임명장이 있으면'이라는 조건으로 일본정부로부터 차관을 주겠다는 내락을 얻어낸 바도 있었다물론 이노우에 카오루 외부경도 이에 동의했다

 

조선의 절망적인 경제상태를 우려하던 고종은 김옥균에게 위임장을 주었는데이를 안 민비는 김옥균이 일본으로부터 차관을 얻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을 강구하였다만일 그가 300만원이라는 막대한 차관 도입에 성공한다면 반드시 개화 정책을 추진할 것은 자명했다그것은 민씨일족의 세도정치에 극히 위험한 것이었다민비는 묄렌도르프를 불러 대책을 논의했다묄렌은 청나라 이홍장의 추천으로 조선정부의 고문이 되었으나 이미 그때는 청의 이해를 도외시하고 오직 민비 세력을 위해 힘쓰고 있었다묄렌도르프는 일본 공사관을 방문했다다케조에 신이치로 공사는 한문에 소양이 깊어 문인 외교관으로 불리던 사람으로서 청의 정치가와 군인 중에도 친구가 많았고 묄렌과는 텐진 영사시절부터 친분이 있었다.

 

묄렌도르프는 다케조에 신이치로 공사에게 "김옥균이 계획하고 있는 차관 교섭은 조선 정부와는 관계없는 것으로 김옥균 개인의 사기행위라고 밖에 볼 수 없다일본정부는 이에 속지 않도록 자중하기 바란다."고 말했다나아가 묄렌도르프는 민태호민영익과 상의하여 해관 업무를 다이이치 은행에 넘겨주었다해관세 수입이 차관의 담보가 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대책이었다다케조에 공사는 평소 개화독립당에 호감을 갖고 있지 않았다특히 김옥균이 일본에서 외채를 구하는 중대한 건을 일본정부를 대표하는 공사를 제쳐두고 본국 정부와 직접 교섭한 것에 대해 자존심이 몹시 상한 다케조에 신이치로는 이노우에 외무경 앞으로 '김옥균은 신용할 수 없는 인물로 그가 지참하는 국왕 위임장은 위조된 것이다'라고 통지하였다. 1883년 7월 아무것도 모르는 김옥균이 일본으로 향했다그러나 일본 정부의 태도는 차가웠고 특히 이노우에 카오루 외무경은 차관 내락을 알고 있으면서도 몇 번이나 찾아가도 면회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300만원의 차관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차관교섭이 성립하지 못한 것은 다케조에 신이치로의 중상모략 때문만은 아니었다일본이 당시 조선의 경제상황을 조사해보니 경제 사정이 너무나도 나빴으므로 '상환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김옥균의 입장을 동정한 주일 미국 공사 존 빙감이 런던과 뉴욕의 금융시장에 기체를 주선해 주었으나 역시 조선의 경제상황이 문제되어 실현되지 못했다김옥균은 마지막으로 다이이치 국립은행의 대표 시부사와 에이치에게 차관을 간청하자, '300만원은 무리지만 이노우에 외무경의 보증이 있다면 소액 정도는....'이라고 대답했다그러나 이노우에를 비롯한 일본정부가 이에 응할 리가 없었다. 1884년 4실의에 찬 김옥균은 조선으로 돌아온다.

 

김옥균이 일본에 있는 동안 조선에서는 조악한 당오전 화폐가 막대한 양으로 유통되어 종래의 법정화폐인 상평통보는 시장에서 모습을 감추었다물가는 폭등하고 서민생활을 더욱 궁핍해졌으나 당오전 주조로 막대한 이익을 올린 민씨 일족은 더욱 번영했다정계를 떠나 있던 김옥균은 그 대표인 민태호를 공공연하게 비판했다그의 차관 교섭 실패로 정부 내에서 개화파의 활동은 거의 막혀버렸다이때까지 개화파가 의도하던 평화적 방법에 의한 근대화는 이제 그 한계가 명백해졌다국내 정세는 점점 김옥균을 조바심 나게 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 갔다.

 

이홍장 휘하의 위안스카이(원세개)가 서울에서 위세를 부리며 민씨 일족과 결탁하여 마치엔총묄렌도르프와 함께 내정간섭을 강화해 갔다이홍장은 종래의 구미제독에게 조선은 우리 속방이지만 간섭은 하지 않는다고 표방하고 있었으나 이제는 그것을 부인하듯 휘하의 청국사람 여러 명을 조선에 보내 내정과 외교 간섭을 강화하고 있었다조선은 1883년에는 영국과 1884년에는 러시아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와도 수호조약을 맺었으나 오랜 쇄국 때문에 외국어를 이해하는 사람이 드물었고 국제법에 대한 지식도 부족해서 외교 면에서는 청국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김옥균은 이홍장이 주도하는 청국의 태도에 더욱 굴욕감을 느꼈다.

 

이때 25세이던 위안스카이는 김옥균 등이 일으킨 갑신정변 다음해인 1885년에 주차 조선총리교섭통상사의조선주재 대표가 되어 청국의 힘을 배경으로 고종을 능가하는 실력자가 되어있었다위안스카이(원세개)는 1911년 신해혁명에 의해 수상이 되었고 1912년 청 황제의 퇴위 후에는 중화민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이어서 스스로 황제 자리에 오르지만 실각하고 1916년, 57세로 사망했다.

 

김옥균이 구체적으로 쿠데타를 결심한 것은 차관 교섭에 실패하고 일본에서 돌아온 후가 아니었을까그는 일본에 있을 때부터 만약 평화적인 방법으로 조선의 근대화가 불가능하다면 비상수단에 호소하겠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던 것 같다그는 가장 먼저 일본 정부의 지원을 기대했으나 그것은 불가능하다는 게 명백해졌다그래서 후쿠자와 유키치의 소개로 알게 된 고토 쇼지로에게 속마음을 털어 놓고 협력을 구했다김옥균이 후쿠자와 고토 앞으로 보낸 편지를 보면 이 두 사람이 그의 계획을 알고 지지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나아가 코토 쇼지로와 같은 토사계의 이타가키 다이스케도 김옥균을 지지했다자유민권운동이 쇠하던 이즈음 고토와 이타가키 등은 조선통치에 큰 관심을 갖고 있었다.

 

고토 쇼지로는 대정봉환운동(막부에게 있던 통치권을 천황에게 일임)을 일으켜 메이지 유신 후에 참의가 되었으나 정한론에 지자 자리에서 물러났다이타가키 등과 의회개설을 건의하고 자유당에 참가했으나 후에 대동단결을 제창한 정치가로 체신상 농상무상의 경력이 있다무쓰 무네미쓰는 그의 마지막 논문 '고토백작'에서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고토 쇼지로는 내정에서 실패하여 내정에서 자신이 손쓸 여지가 없음을 알자 조선을 통치하려고 몰래 친구들과 짜고 김옥균 등의 개화당을 도와세력을 강화함으로써 스스로 총리대신이 되어 조선 팔도를 경영 하려고 계획하였다.' 고토가 김옥균 지원 계획을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에게 말하자 이토는 놀라서 "중지하라"고 하였으나 그가 듣지 않자 이토는 이를 이노우에 카오루에게 이야기하였다. 이노우에는 조선 문제를 고토 등의 민간인들에게 맡겨둘 수 없다며 적극책으로 바꾸었다이것은 갑신정변이 일어난 1884년 후반기의 일이다.

 

김옥균의 쿠데타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그 결행을 재촉할만한 일이 계속해서 일어났다. 6월에는 월남 문제로 청과 프랑스 사이에 일어난 전쟁에서 청국이 연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에 종주국으로서의 청의 권위가 쇠퇴되기 시작했다. 이 전쟁 때문에 서울에 주둔하고 있던 청군 절반이 철수하였다. 쿠데타의 최대 장애는 서울에 주둔한 3천명의 청군이라고 생각하던 김옥균 등에게는 매우 기쁜 소식이었다. 7월에는 후에 갑신정변 때 행동대의 중심이 되는 육군 도야마 학교 유학생 14명이 귀국했다묄렌도르프는 평소 그의 재정 재건책을 강하게 비판해온 김옥균을 비롯해 개화파와 위험 분자들을 말살 하고자 했다그는 민비에게도 김옥균을 제거해야 한다'고 자주 진언했다. '민비를 중심으로 하는 세도정치의 뿌리를 뽑지 않으면 조선의 근대화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는 김옥균은 묄렌도르프가 말한 대로 민씨 일족에게는 위험인물임이 틀림없었다이리하여 김옥균은 묄렌도르프에 점차 몰리게 된다그의 가슴속에는 '이대로 시간을 보내면 아무 일도 못한 채 끝난다.'는 조급함이 있었을 것이다김옥균이 준비가 덜 된 쿠데타를 일으킨 원인중 하나가 여기에 있다.

 

김옥균에게는 '개화사상을 국정에 구현하기 위한 정치적 주축은 나를 중심으로 하는 개화파의 핵심 분자들이다'라는 자부심이 있었고 그것은 강한 사명감으로 변하였다궁지에 몰린 그는 '무엇보다도 현실을 타파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한 가지 생각만 했을 것이다비상수단을 취한 다음에야 어떻게 되든 지금보다 나쁠 리는 없다고 생각하여 솟구쳐 오르는 의구심을 누르고 오직 전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그러나 쿠데타 결행을 향한 열정에 비하면 그 후의 국가 운영과 대중의 동향에 대한 통찰력은 부족했다또 모든 악의 토대인 민씨 일족의 실세 몇 사람을 없애는 것이 국정개혁의 해법이 된다고 생각한 점에서도 김옥균의 한계를 알 수 있다.

 

베트남 문제로 발생한 청불 전쟁은 일본에도 중대한 영향을 끼쳤다청의 종주권이 쇄퇴했음을 인지한 이노우에 카오루는 이를 임오군란 이후 약화된 일본 세력을 만회할 좋은 기회로 보았다그는 수개월 전에 일본으로 돌아온 다케조에 신이치로 공사에게 자신의 뜻을 전달하고 임지로 돌려보냈다.

 

10월 서울로 돌아온 다케조에는 그전과는 다른 태도로 청과 청측에 의지하는 수구파들에게 도발적인 태도를 보이며 개화파에 접근해 갔다박영효로부터 이를 전해들은 김옥균은 다케조에 신이치로 공사를 방문해서 1년 전에 차관 교섭을 방해한 것을 비난했다다케조에는 솔직하게 사과하고 정세가 변하면 국가방침도 변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며 앞으로 협력할 것을 맹세했다 이리하여 개화파와 다케조에 사이에 쿠데타 실행을 위한 구체적인 논의가 급속히 진전된다양자의 임무분담은 개화파가 내정개혁과 사대파 간신들의 말살을 수행하고 일본 측이 개화파의 자주 방위체제가 정비될 때까지 청국군의 무력간섭을 배제한다고 정해졌다

 

박영효는 당시를 회고하는 글에서, '단지 꺼릴 것은 청국군 뿐이었다이를 제거하기 위해서는 여하튼 일본군의 힘을 빌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몇 번인가 망설였으나 결국 다케조에 공사의 확답을 얻어서 드디어 운동에 착수했다'고 썼다. 당연히 망설였을 것이다김옥균이나 박영효도 손바닥 뒤집듯 그들 편이 된 다케조에 신이치로를 처음부터 신뢰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10월 이후에 다케조에가 자주 고종에게 아첨하여 "이제 청국은 의지할 만하지 못합니다일본이야말로....." 라고 말한 것등을 보고 일본정부의 개화당 지지 의지는 확실하다고 신뢰하게 된 걸까아니면 다케조에의 협력 없이 거사는 불가능하다는 전제 때문에 의심하면서도 믿었던 것일까더구나 청국의 조선 주둔 병력이 반감했다고는 하나 아직도 1천 5백이 남아있었다이에 비해 일본병력은 겨우 150명인데일본 정예군을 쓴다면 청군을 격퇴하는 것은 문제없다는 다케조에의 호언장담을 그대로 믿었던 것일까아니면 거사하기로 이미 결정한 바에야 믿을 수밖에 없다고 자신을 타일렀던 것일까이때 김옥균은 거사의 성패보다도 결행 그 자체에만 주목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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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M 고고탁
저도 역사를 아주 좋아합니다..^^
후에 만나서 막걸리 한잔 하면서 역사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네요.
저는 백제 역사에 특히 관심이 많습니다.
46 낙엽송
빛고을에 사시다보니... 좋지요. ^^
46 낙엽송
근래 구한말 우리 역사를 들여다보면서 갑갑함과 부끄러움을 금할 수가 없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하얼빈에서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하면서 "국모를 시해한 원수를 갚았다!" 하였고... 쓰노다 여사는 안의사의 의거를 "일본 낭인의 칼에 숨진 황후의 피값이 되돌아 온 것"이라 표현했더군요. 김옥균은 고종의 명을 받고 외채를 빌려서라도 어떡하든 나라를 개화로 이끌겠다는 일념으로 일본에 가서 그 모진 수모를 겪고 빈손으로 돌아오는데... 현해탄을 건널 때 그 울분은 어떠했을까요? 헌데 막상 돌아와보니 민비와 민씨 세력은 악화인 당오전 발행으로 자기들 배만 불리고 있으니.... 국고에 돈이 없으니 사절단의 일본 체류 비용 5천원도 일본이 대줬다 했으니 그 수치심을 뭐라 표현할까요? 위정자들의 무능과 사치, 재산축적으로 민생은 피폐하고 가혹한 일본의 수탈과 폭력으로 손톱발톱이 다뽑히면서도 애국애민 일념으로 형무소에서 죽어간 우리 우국지사들이.... 너무 가엽어서 가슴이 미어지는군요. 삼국간섭과 민비의 피살, 3일천하로 끝난 갑신정변의 과정과 결과는 익히 아는 내용이라 더 이어갈지는 모르겠군요.
24 목다리
예나 지금이나 국익을 우선하는 정책이어야 하는데 권력을 바탕으로 정적을 없엘려고만 하니 나라꼴이 개판이고 청과 일본에 의지하는 이 못난 조상들 좌우지간 중.일는 우리에게 영원히 민폐만 끼치고 있다

Congratulations! You win the 37 Lucky Point!

42 라윤영
김옥균의 묘비명
" 비상한 재주를 가지고, 비상한 시대를 만났지만 ,
비상한 공적도 없이, 비상한 죽음만 얻었도다 "
정말 명문 입니다  김좌진 장군의 9촌 숙부가 되시고
 갑신정변 때 흥선대원군을 다시 모셔오자고 주장해서 모두가 반대하자 "나 안동 김씨일세" 라고 일갈했다는 설화도 있습니다
99 정다운
저도 잘 보고 갑니다.
28 calypso
낙엽송님께서 역사에 관심이 많고, 조예도 깊으시군요.
고고탁님도 역사에 관심이 많으시구요.
실은 저도 역사에 관심이 많습니다.
46 낙엽송
저 책들의 저자들은 대다수 이름있는 역사학자이거나 익히 알려진 인사들입니다. 그들의 자료를 근거로 작성된 포스팅인데다가 퍽 객관적으로 서술한 것이고, 다소간의 개연성이나 문맥상 매끄럽게 하기 위해 내 의견을 조금씩 가미하였을 뿐이므로 여러분들의 의견에 따로 댓글을 달지는 않을 것이니, 양해바랍니다.^^
59 나름대로5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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