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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오디오 편력기

1 입센 5 3,649
초등학교 운동회 때마다 가슴이 설레곤 했다.
청군과 백군으로 나누어 하는 운동회는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그때 나는 공교롭게도 백군은 한 번도 들지 않고 청군에 속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그 운동회에서 내가 소속된 청군이나 나 개인이 이기고 지는 것은 나의 큰 관심사가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나의 가슴을 설레게 했던 것은 혼스피커를 타고 나왔던 음악이었다.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로 시작되는 어린이날 동요로부터
당시에는 무슨 곡인지 몰랐던 요한 스트라우스의 라데스키 행진곡 등 여러 가지 클래식 음악이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이다.

그래서 추석이 지나면 가을 운동회가 오기를 은근히 기다렸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학교 수업 중 가장 좋아하는 과목이 음악이었음은 두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시골의 작은 학교를 다닌 결과, 음악에 조예가 있었던 선생님은 1학년과 4학년 선생님이었을 뿐, 다른 선생님들은 음악의 ‘음’자도 몰랐다. 그래서 2.3학년과 5,6학년의 동요도 누나들이 부르는 것을 귀동냥으로 배웠던 것이다. 동요도 모르고 초등학교를 마칠 것을 그나마 누나들이 있어 천만다행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던 초등학교 5학년이던 어느 날, 우리 집에 전축 장수가 찾아왔다.
우리 집은 동네의 한 어귀에 있었던 관계로,
전축장수가 전축을 크게 틀어놓고 얼마가 지나자 동네 어른들이 하나 둘씩 우리 집으로 모여 들기 시작하였다.
동네 어른들은 전축에 부러운 표정을 지으면서도 당시의 경제 사정은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을 듣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고
그 전축장수 아저씨도 헛수고를 감내해야만 했다.
나는 크게 실망하였다.
왜냐하면 우리 집의 경제 사정이 동네에서는 비교적 좋은 편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나의 아버지는 전축을 들여놓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아버지 역시 전축을 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한테 “전축을 들여놓자.”고 졸라 보기라도 할 걸 하는 부질없는 생각도 해 보지만,
당시 나는 무척이나 내성적이었으므로 입 속으로만 몇 번 되뇌었을 뿐, 전축을 들여놓자는 말은 엄두도 못 내었다.
또한 엄격하기로 유명하였던 아버지한테 감히 그런 말을 건넨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도 어려웠던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좋아했던 음악은 나의 내향적인 성격으로 고등학교의 밴드부를 먼발치에서 동경하기만 하였을 뿐, 결국 나와 인연이 되지 못하였다. 그렇다, 음악은 나와 인연이 되지 못하는 것은 운명인 것이다.
내가 성장하고서도 음악을 마냥 짝사랑하는 것으로 음악은 나와 멀어져 가기만 하였다.
그러나 그 짝사랑이라는 병은 아무리 지우려 해도 질기게도 자신을 괴롭히기만 하였다.
그렇게도 나를 괴롭혔던 음악에 대한 사랑은 내가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고서야 비로소 맺을 수 있었다.
결혼 이듬해인 89년 초에 나는 서점으로 달려가 무작정 오디오 음악잡지를 샀다.
그 잡지에는 스피커 자작기를 실어 놓았으며
나는 주저하지 않고 청계천에 가서 부품을 구입하여 잡지의 도면대로 스피커를 제작하였다.
그리고 스피커를 구동하기 위한 앰프와 소스기기인 턴테이블은 잡지의 중고코너에서,
또 다른 소스기기인 CDP는 청계천에서 구입하였다.
비록 보잘 것 없는 오디오와 음반 몇 가지를 갖추고 퇴근 후와 쉬는 날에 음악을 듣는 황홀한 여정이 시작되었다.

그렇게 집에서 음악을 즐기기를 1년여가 흐른 가운데, 이듬해인 90년에 나는 직장을 성남에서 부천으로 이동하였다.
새로운 나의 부서에는 성악과 지휘를 하는 동료가 있었으며,
음악 이론의 토양을 고루 갖춘 그 직원은 음악과 오디오에 관한 한 나와 비견할 수 없는 고수였다.
서로의 취미를 확인한 그와 나는 만나자마자 의기투합하여 스피커를 만들기도 하고
청계천과 용산의 오디오점에 함께 다니면서 오디오에 대한 안목을 키워나갔다.

그러는 사이, 그와 나는 2년이 멀다하고 마음에 드는 오디오로 바꾸기에 여념이 없었고
오디오를 바꿀 때면 아내에게 무슨 소리라도 듣지 않을까 하며 전전긍긍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오디오 바꿈질을 하기 10여 년 동안 다행히도, 그리고 약속이라도 한 듯
그와 나의 아내들은 착하게도(?) 바꾸는 오디오에 시비를 걸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아침에 일어나 내가 음악을 듣기 위해서 오디오를 켜면
“아, 나는 당신과 결혼하기를 참 잘 했네, 어쩌면 아침부터 이렇게도 좋은 음악을 틀어줄까!”하며
감동어린 말을 할 정도로 후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으쓱한 어깨를 추스르기에 바빴던 일.

처음에도 그랬고 지금도 초라하기 이를 데 없는 오디오 편력 17년 후의 어느 날,
덩치 크고 한 무게 하는 진공관 앰프 두 덩이를 들여놓기에 이르렀다.
이 때도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그리고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아내가 아무 말이 없이 지나치기를 바랐다.
아내는 전과 마찬가지로 새로 들인 앰프를 보고는 “앰프가 멋지네, 가격이 꽤 나갈 것 같은데?”라는 말을 할 뿐,
남편의 신경을 건드리지 않았다.
혹여 뭐라고 나무랄까 조마조마하던 차에 “휴!”하고는 전과 같이 안심하며 음악을 듣곤 했다. 그
렇게 며칠이 지난 어느 토요일 저녁, 아내는 뜬금없이 술상을 차리고는 함께 음악을 듣자고 한다.
술 한 잔에 음악이 익어가고……
아내는 음악이 너무 좋다며 감동에 감동을 거듭한다.
아내가 음악을 술로 대신하면서 대화를 하던 도중,
“여보야, 오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이 너무 좋네! 여보, 그런데 오디오 그만 바꾸면 안 될까?”한다.
이에 “그래, 당분간 바꾸지 않을 거야.”하는 나의 대답에
“당신이 오디오 바꿀 때, 100만원짜리 50만원 줬다고 하고 200만원짜리 100만원 줬다는 거 다 알고 있어,
그동안 당신한테 얘기하고 싶었지만 당신 자존심도 있잖아,
그래서 그동안 한 번도 당신한테 얘기하지 않았던 거야.
내가 지금 당신 자존심 건드렸다면 미안하고!”
가슴이 철썩 내려앉는다.
어찌도 이토록 정확하게 알아 맞춘단 말인가? 도대체 남자들이 헤아릴 수 없는 여자들의 직관력이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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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M 고고탁

ㅎㅎ.. 행복하시겠습니다.

사모님이 사려도 깊고 배려심도 많으시네요.

 

저도 음악 mp만 30만곡 정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집한지 10년쯤 된 것 같습니다.

주로 소리바다를 통해서 했는데요.

이 것 보관하는데도 꽤 귀찮습니다.

 

대1때 아버지 용돈주시는 것 모아모아서 처음으로 LP 전축을 샀는데 기억이 정확하지 않지만

한 20만원 줬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결혼할때 지금 사용하고 있는 CD레코드 전축을 샀는데요.

현재 CD만 한 1000장 가지고 있습니다.

울적하면 또는 부부싸움후 조용히 듣기도 합니다.

 

mp3하고는 맛이 틀리지요.

 

입센님은 스피커를 직접 조립까지 하신다면 틀림없이 매니아 맞습니다.

1 입센

고고탁님은 대단한 음악 애호가이십니다.

언제 제가 한수 지도받아도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오늘 올린 글에 일일히 그리고 정성껏 댓글 달아주시는 고고탁님에게서

음악의 향기뿐만 아니라 인간의 향기까지 와 닿는 느낌입니다.

M 고고탁

저는 남의 애기 듣는게 즐겁습니다.

특히 감정이 실린 글,

또는 제가 알지 못하는 내용을 담는 글을 보면

읽은 것만으로도 매우 흥겹습니다.

 

불행히도 저는 음악은 많이 알지 못하구요.

좋아만 합니다.

 

어쩜 제가 많이 입센님한테 지도를 받아야 할 것 같군요.

1 개미늘보

어른들 취미는 다 돈이 많이 드는것 같습니다. 

그중에서도 오디오는 펌프질 했다하면 몇백 하이엔드로 눈돌리면 몇천씩 하더군요. 

카메라도 렌즈타령에 지름신 드나들고...만만한게 탁구인가 했더니,

탁구도 라켓이 십수만원에 목재한번, 카본한번,  펜홀더에서 중펜한번...세이크로...변경, 5겹합판, 7겹합판 ...하이텐션라바...중국라바... 실력없이 장비욕심에 몇번 바꾸니 라켓 한... 열개에  운동화 세켤레...옷..몇벌... 레슨1년 ...

집사람 것 까지 한 셋트 사주니 제법 드네요. 담배 끊고 담배값으로 배운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그중에서 탁구는 적게드는 편이라고 위안을 삼아야겠지요? ㅎㅎ

4 아데네

오디오 정말 좋은 취미지요! 저는 직업입니다. 25년 이상 이일을 했고 지금은 AMP 제작 같은 일은 아니고  AUDIO U-COM PROGRAM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 PROGRAM으로 U-COM이  AUDIO Control용이었다, TV/ 냉장고등 다른 가전 Control이 되었다 합니다) 취미든 직업이든 좋아하는 것이 같은 분을 뵈어 반갑습니다 (사실 저는 음악은 문외한 이고 기기 분해 조립이 좋아 이일을 배우고 하게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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